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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본보기의 어원분석 : 견본 모델 샘플

by 61녹산 2023.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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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기
본보기


"너는 생전에 좋은 일과 나쁜 짓을 꼭 반반씩 했으니 천국으로도 지옥으로도 보낼 수가 없다. 그러니 여기 있는 지옥과 천국의 집을 보고 마음에 드는 곳을 골라 가거라." 염라대왕의 말을 듣고 사자(死者)는 천국과 지옥으로 가는 두 길 어귀에 마련해 놓은 집 구경을 했다. 천국이라고 쓴 집에는 아름다운 꽃과 탐스러운 열매들ㅇ이 우거진 동산이 있었지만 사람은 한적했다. 그러나 지옥은 생각과는 달리 환경도 좋아 보였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즐겁게 디스코 춤을 추고 있었다. 그래서 사자는 지옥을 택했다. 하지만 막상 그곳에 도착해서 살펴보니 완전 딴판이었다. 어둡고 음산한 곳에서 사람들이 디스코를 추고 있는 것이 아니라 뜨거운 유황불 속에서 몸부림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염라대왕을 찾아가 좀 전에 보았던 지옥과는 딴판이라고 거센 항의를 했다. 그러자 염라대왕은 멋쩍게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하더라는 것이다. 

 

"이 사람아, 그건 모델 하우스잖아."

 

모델이라는 말은 학술 용어에서부터 패션 모델에 이르기까지 그 사용 범위가 워낙 넓어서 모형이나 표본이라는 말로는 감당해 내기 힘들다. 샘플이라는 말 역시 마찬가지다. 견본(見本)이라는 말은 책(冊)을 '혼[本]'이라고 하고 본보기를 '데혼[手本]'이라고 하는 일본 사람들이 만든 한자 말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모델 샘플 견본 등 한국말에는 이러한 말들에 딱 들어맞는 순우리말이 딱히 없다. 그래서 "흰 라인 선 밖으로 나가주십시오"라는 안내 방송을 들은 사람이 "저 사람은 말을 겹쳐 쓰는 샘플 견본의 표준 모델이네"라고 우수갯소리를 했다고 한다. 

 

굳이 찾아 보라면 '본보기'인데 그것이 바로 문제다. 본보기는 보통과는 달리 특별히 잘 보이도록 만든 것이다. 그래서 모델이나 샘플을 본보기로 알고 있기 때문에 모델 하우스와 같은 우스개 이야기도 나오게 된 것이다. 일본이 처음 서양과 무역을 할 때 가장 고전을 한 것도 샘플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명치(明治) 때의 런던 주재 영사가 보내온 보고문에도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 

 

"일본 상인은 샘플의 뜻을 오해하여 견본을 만드는 데는 최상의 자료와 기량으로 있는 정성을 다하지만 그것을 보고 막상 상품을 주문하면 형편없는 조제품들을 보내온다."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일본이지만 국제 시장에 처음 진출했을 때에는 우리와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견본'이나 '본보기'라는 말에는 무엇인가를 '보여준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자칫 잘못하면 "무언가를 보여준다"는 그 유행어처럼 평상시의 자기 실력 이상의 것을 과시하려는 허욕이나 눈가림이 되기도 한다.

 

서구 국가들이 근대 산업 국가에 성공한 것은 철저한 본보기 문화를 만들어낸 데 있었다. 하나의 예로서 서구에서 산업화와 도시화가 이루어지면서 건축물의 고층화가 절대적으로 요청되던 때 가장 장애의 요소가 되었던 것은 엘리베이터였다. 에펠에 의해 철골 건조물 기술이 생겨 고층화는 에펠탑만큼 높아질 수 있었지만 그 높이까지 사람을 운반하는 수단인 엘리베이터 기술은 그에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그 장애를 제거하고 엘리베이터 산업에 선구자 노릇을 하게 된 기업가가 바로 오티스라는 사람이다. 지금도 엘리베이터를 탈 때 그 제조 회사 이름으로 오티스라는 로고를 볼 수 있지만 이 오티스의 전략은 엘리베이터의 안전성을 높이고 사용자들이 그것을 신뢰하도록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야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갖게 된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이다. 엘리베이터가 아니라 안전을 팔자는 그의 전략을 널리 알리기 위해 그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파리 박람회를 이용했다. 수만 군중이 모인 광장에 1백여 미터 높이의 탑을 세워 거기에 엘리베이터를 장치해 놓고 자기 자신이 직접 타고 올라갔다. 그리고는 꼭대기에 올라가자 엘리베이터의 줄을 도끼로 찍어 끊었다. 순간 엘리베이터가 아래로 낙하하여 군중들이 비명을 질렀지만 도중에 안전 장치가 작동하여 아무런 사고 없이 멈추는 장면을 연출해 냈다. 오티스는 군중들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모든 게 안전하다(it's all safe)"라고 외쳤다. 이것이 본보기이다. 이러한 본보기로 그는 엘리베이터의 역사는 추락의 역사라고 하던 당시의 의식을 말끔히 불식 시키고 오늘의 고층화에 튼튼한 길을 열어 놓았다. 

 

또 미국의 전략 공군을 창설한 신화적인 르메이 장군이 일본 본토 폭겨의 전략을 세웠을 때에도 그 같은 본보기 전략을 썼다. 모든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장군은 B-29에서 불필요한 장치를 다 떼어내고 기지에서 일본 본토까지 왕복할 수 있는 연료와 폭탄을 가득 실었다. 그 중량이 대단해서 1번기가 출동했을 때 이륙을 하지 못한 채 바다에 떨어지고 말았다. 2번기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을 본 3번기의 조종사는 출동 명령이 내렸는데도 비행기를 이륙시키지 않았다. 르메이 장군은 조종사를 조종석에서 끌어내고 자신이 직접 조종간을 잡고 발진시켰다. 비행기는 이륙에 성공했고 다음 비행기들은 모두 그 뒤를 따라 날아올랐다. 이렇게 해서 신화적인 전략 공군의 일본 본토 공습이 이루어지게 된다.

 

모델 샘플 등의 본보기들은 일종의 정보이다. 정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가 자전거를 탈 때 계속 넘어져도 끝까지 연습해서 성공을 하는 것은 자기 눈앞에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두 바퀴 달린 승용물은 탈 수 없는 것이라는 편견의 지배로 한번 쓰러지면 다시 탈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공업화에 자신감을 가졌던 것은 비록 거친 방법이기는 했으나 성공을 한 몇 개의 선례를 남겼기 때문이고 그런 좋은 사례를 만들어낸 개척자들이 이 땅에 있었기 때문이다. 

 

본보기가 되십시오
본보기가 되십시오

 

 

본보기를 보여준 기업가 행정가 기술자들이 우리의 근대화를 만들어냈다. 얼마 전까지 아시아에서는 일본만이 예외적으로 서구와 같은 공업화를 할 수 있는 나라라는 것이 정설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일본이 할 수 있으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생각과 또 그런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오티스가 탔던 엘리베이터만이 안전하고 다른 엘리베이터는 그 모델과 다르다고 생각했더라면 목숨을 건 그 이벤트가 무슨 소용이 있었겠는가? 르메이 장군의 비행기만이 뜰 수 있고 다른 비행기는 뜰 수 없었다고 생각했다면 그 뒤를 이어 비행기들이 발진을 할 수 있었겠는가? 모델은 정보 중에 가장 값진 것이다. 그 모델이 사실과 다를 때 우리는 정보 자체를 불신하게 된다. 그런 현상은 모델의 역기능밖에는 낳지 못한다. 정보화 사회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지만 사실은 견본인지 모델인지 샘플인지 그 말조차 희미한 그 본보기 문화를 정착시킬 때 그런 사회는 현실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코로나 19시대를 거치면서 본보기만을 보고 쫓아가기에 바빴던 우리가 이제는 전세계의 본보기 국가로 우뚝 자리매김하게 된 듯 하다. 전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우리나라만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다. 20세기까지는 본보기를 보고 따라가기 바빴다면 이제 21세기는 우리가 본보기가 되어 전 세계의 시스템들을 이끌고 나가야 한다. 개척이다. 없는 길을 만들면서 가야 한다. 이제 그 때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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