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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나들이의 어원 : 나다 + 들다 + 그러한 거

by 61녹산 2023.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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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이 : 나다 + 들다 (양방향 사고)
나들이 : 나다 + 들다 (양방향 사고)


"병아리 떼 종종종 봄 나들이 갑니다"라는 동요가 있다. 서너 살 먹은 아이들도 부를 수 있는 쉬운 말들이지만 이것을 영어로 옮기려고 하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귀엽고 앙증맞은 '종종'이라는 그 의태어는 물론이고 '나들이'라는 순 우리말에서도 잠시 멈춤하게 된다.

 

나들이는 외출을 뜻하는 말이므로 고잉 아웃(going out)이라고 하면 될 것이 아니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한자 말의 외출(外出)처럼 아웃 한 방향만 나타내고 있지만 나들이는 쌍방향으로 구성되어 있는 말이다. 나들이의 '나'는 '나가다'이고 '들이'는 '들어오다'의 뜻이기 때문이다. 나가고 들어오는 정반대의 개념이 하나로 뭉쳐진 말이라는 데 그 독특한 묘미가 있다. 뜻으로 보아도 '나들이'가 옳다. 나들이는 가출이나 먼 여행과는 달라서 아주 밖으로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것이 아니다. 잠시 나갔다 들어오는 외출이기 때문에 나가는 것 못지 않게 들어오는 개념도 아주 중요하다. 그런데 매사를 흑 아니면 백으로 생각하는 서양의 배타적 논리는 이 쌍방향의 인식에 약하다.

 

문은 하나인데도 서양에서는 반드시 나가는 문(EXIT)과 들어오는 문(entrance)으로 갈라놓는다. 우리처럼 그냥 출입문이라고 하면 간단한 것을 두고 말이다. 빼기도 하고 닫기도 하는 것이 서랍인데도 영어의 드로어(drawer)에는 '빼내는 것'이라는 한쪽 의미밖에는 없다. 그 말대로라면 서양 사람은 한번 빼면 영원히 닫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한 개념으로 봐서 그냥 빼닫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야말로 빼고 닫는 양면성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같은 동북 아시아 문화권이라고 하지만 일본 말 역시 서랍을 '히기다시'라고 하는데 그 뜻은 끌어서 밖으로 빼낸다는 뜻이다. 외출복도 나들이옷이라고 하는 한국말은 분명 한자 문화권 속에서 자라났지만 독자적인 특성도 고스란히 지켜오고 있다. 

 

유럽 언어들을 보면 거의 예외 없이 그렇게 되어 있다. 엘리베이터란 말은 엘리베이트, 즉 위로 올라간다는 동사를 명사형으로 만든 말로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위로 올라가는 것'이라는 뜻이 된다. 그래서 중세 때의 영어로 엘리베이터라고 하면 고층 건물을 오르내리는 기계가 죄의 구렁에 빠진 사람을 위로 끌어내 구제해 주는 성직자들을 일컫는 말이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간다"라는 말처럼 웃기는 말도 없을 듯 하다. '올라가는 것 타고 내려갈게'라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그 정도가 아니다. 라틴계든 앵글로색슨계든 서양 말에는 밤과 낮이라는 말은 구별이 있어도 그 두 말을 하나로 융합해 24시간의 하루를 뜻하는 말은 분명치가 않다. 낮을 데이(day)라고 하고 밤을 나이트(night)라고 한다는 것은 초등학교 학생들도 다 아는 영어다. 그러나 밤과 낮이 합친 하루도 또 똑같은 데이가 된다는 점에 대해서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많은 것 같지 않다. 밤과 낮은 그렇게 선명하게 구별할 줄 알면서도 어째서 낮과 하루는 같은 데이란 말인가? 생각해 볼수록 정말 묘한 일이 아닌가? 실제로 중세 때 일어난 일이라고 한다. 열흘 동안 휴전을 맺었는데도 밤마다 적군들이 쳐들어왔다. 그래서 휴전 협정 위반이라고 하자 그들은 그 문서에 적은 데이는 하루를 뜻할 때의 그 데이가 아니라 낮을 가리키는 데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협정을 지키기 위해서 이렇게 밤에만 쳐들어오지 않았느냐는 것이었다. 

 

남자를 맨(man), 여자를 우먼(woman)이라고 해놓고 사람을 그냥 또 맨(man)이라고 부르는 것이나 수캐를 도그(dog), 암캐를 비치(bitch)라고 하고 개를 다시 도그(dog)라고 하는 것이나 모두가 그러한 예에 속하는 말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대립하고 모순하는 것을 하나로 융합하여 싸버리는 넓은 보자기 같은 마음이 서구 문명에는 결여되어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덕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렇다. 이 세상은 두 토막으로 빠갤 수 있는 장작개비가 아니다. 손등과 손바닥처럼 둘이면서도 뗄 수 없는 하나인 것이 더 많다.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선 하나를 그어도 붓 글씨의 그 한 일 자 처럼 점을 찍고 긋고 다시 힘을 주어 붓을 떼는 세 강약의 터치로 이루어진다. 거기에서 셋이면서도 한 획인 선의 아름다움이 창조된다. 그러나 서양 사람을 보고 한 일 자를 쓰라고 하면 자를 대고 그은 것처럼 단순한 기하학적 선 하나가 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분단 갈등 대립 혁명으로 얼룩진 서양의 역사와 그 문명의 비밀을 알 것 같다. 바로 이 영원한 이항 대립의 작두 날 위에 세워놓은 것이 우리가 오매불망 흠모해 온 근대 산업 문명의 금자탑이다. 

 

어렸을 때부터 나들이라는 말을 배워온 한국인들이 어느새 정치 문화 할 것 없이 흑백 논리의 양극화를 만들어놓고 근대화의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 오히려 거꾸로 서양 사람들은 서양 문명의 양극적 사고를 탈구축하려고 야단법석이다. 데리다의 <호주머니 이론>도 그런 보기의 하나로 볼 수 있다. 호주머니는 누구나 다 내부 공간이라고 생각하고 안심하지만 소매치기를 한번 당해 보면 그것이 내부로 들어와 있는 외부공간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안에 있으면서도 한데 있는 공간이 탈구축된 공간, 나들이의 공간. 바로 이것이 요즘 우리 문화계에서도 심심찮게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포스트모던이라는 것이다. 언제적 포스트모던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21세기의 정보화 사회 그리고 탈산업 사회는 바로 이 이항 대립의 양극 체계를 탈구축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이제 겨울잠에서 깬 우리의 정치인 그리고 온 국민들도 봄 나들이를 할 때이다. 그리고 21세기의 나들이 채비도 해야 한다. 그러면 온통 세상을 흑백으로만 바라보며 살던 그 극성스러운 시선에도 변화가 생기지 않을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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