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들이 말을 안 듣고 고집만 부릴 때는 참 속상해진다. 이렇게 아이들이 제 고집대로 심하게 투정을 부리거나 떼를 쓸 때 ‘뗑깡 부린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제법 많은 것 같다. 아마도 ‘뗑깡’을 우리말 표현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데, 이것은 우리말 표현이 아니라 일본어 표현이다. 대체할 우리말도 버젓이 존재한다.
일본어에 한자로 ‘전간(癲癎)’이라고 쓰는 말이 있다. 이것을 일본어 발음으로 말하면 ‘뗑깡’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뗑깡’이라는 말은 우리말 한자어로는 ‘간질(癎疾)’이라고 하는 병을 뜻한다. 잘 아시는 것처럼 ‘간질’이라는 병은 발작적으로 경련을 일으키거나 의식을 잃는 등의 증상을 일으키는 질환입니다. 생떼를 쓰거나 투정을 부리는 사람의 모습이 너무 심하다는 것을 간질병의 증상을 보이는 사람에 비유해서 말하는 것 같은데, 귀여운 어린아이들이 투정을 부린다고 해서 ‘뗑깡 부린다.’ 같은 표현을 써서는 당연히 안 되는 것이다.
아이들이 뭔가를 해 달라고 심하게 요구하거나 고집을 부릴 때는 ‘떼를 쓰다’ 또는 ‘투정을 부리다’ 정도로 말씀하시는 것이 좋겠다.
최근 정치권에서 '뗑깡'이라는 말 때문에 작은 소란이 있었다고 한다. 여당 대표가 특정 야당의 공적인 의사 표현 행위를 '뗑깡'으로 평가절하하면서 거센 항의를 받았다는 것이다. '심심한 유감'이라는 모호한 말로 사태는 일단락되었으나, 정치 지도자의 입에서 '뗑깡'이라는 속된 말이 나와 적잖이 놀란 것이 사실이다.
뗑깡은 일본어 '덴칸'에서 온 말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문제가 된다. 이 말은 1950년대 이후 신문 기사에서 검색되지만, 일제 강점기 이후 국어에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일본어 '덴칸'은 경련을 일으키고 의식 장애를 일으키는 발작 증상이 되풀이하여 나타나는 질병을 말한다. 우리말로는 보통 간질(癎疾, 지랄병이라 하고, 전문적으로는 뇌전증(腦轉症)이라 한다.
이 병의 특징은 발작 증상이 일어나 발광을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땅에 쓰러져 거품을 물며 한동안 의식을 잃은 듯 보인다. 남의 행동이 못마땅할 때 쓰는 '지랄하고 자빠졌네'라는 표현 속에 이러한 행동 특징이 잘 드러난다.
그런데 일본어 '덴칸'이 우리말에 '뗑깡'으로 들어와서는 본래의 의미인 '간질, 지랄병'이라는 의미로 쓰이지 않고, '억지, 생떼'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어 특이핟. '간질'의 발작 증상이 마치 무엇을 해달라고 억지를 쓰는 행위로 비칠 수 있어서 이 같은 의미가 생겨난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본다. 물론 일본어 '덴칸'이 우리말에 들어오자마자 이러한 의미로 쓰였는지는 좀 더 생각해 보아야 한다. '뗑깡'은 주로 구어에서 '부리다, 놓다, 피우다, 쓰다' 등과 어울려 쓰인다.
<생활 용어 수정 보완 고시 자료 1966년 3월)에는 '뗑깡' 대신 순화한 용어 '생떼'만 쓰라고 되어 있다. <표준국어대사전 1999>에 '뗑깡'을 올리지 않은 것도 그 때문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국립국어원의 개방형 사전인 <우리말샘 2016>에서는 '뗑깡'이 아닌 '땡깡'을 공식 표기로 삼고 있다. '땡깡'은 '뗑깡'의 제1음절 모음 '에'가 '애'와 혼동되면서 나타난 것이다. '기지게'가 '기지개'로, '무지게'가 '무지개'로 변한 것과 같은 양상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뗑깡'과 '땡깡'을 같이 쓰고 있다. '뗑깡'이든, '땡깡'이든 이것이 속된 의미의 일본어계 단어이고, 또 이를 대체할 만한 '억지, 생떼' 등과 같은 우리말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굳이 사용해야 할 이유는 없다. '뗑깡'은 그야말로 버려야 할 우리말 속 일본어의 대표적 잔재이다. '억지를 부리다, 억지를 쓰다, 생떼를 부리다, 생떼를 쓰다'라고 하면 그만이다.
경북지역에서는 '깡패'를 '땡깡재이'라고도 한다. 이 '땡깡쟁이'에서 변한 말로, '땡깡'에서 접미사 '-쟁이'가 결합된 어형이다. 건으로 터무니없이 억지 부리는 '깡패'의 속성을 반영하여 만든 말이다.
우리 일상 용어 속에는 아직도 적지 않은 일본말이 남아 있다. 그동안 국어 순화 운동과 국어 교육을 통하여 많이 바뀌었지만, 지금도 우리말 속에는 일본말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있다.
○ 곤조(こんじょう) → 본성(本性), 근성(根性), 심지(心地), 성깔
‘곤조(こんじょう)’는 일본식 한자어 ‘근성(根性)’을 일본말로 발음한 것이다. 우리말의 ‘본성(本性)’, ‘성깔’과 뜻이 비슷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좋지 않은 성격이나 심보, 나쁜 근성을 가리키는 말로 많이 쓰이고 있다. 또한 특수한 직업이나 일 때문에 생긴 날카로운 성질이나 성깔을 가리키는 비속어로도 널리 쓰이고 있다. 듣는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하고 말하는 사람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곤조(こんじょう)’는 이제 바꿔 써야 할 말이다. 『일본어투 생활용어 순화집』(1995)에서는 순화한 말로 ‘본성’, ‘근성’, ‘심지’를 쓰도록 하였으나, 때로는 좋지 않은 성질을 나타낼 때도 있으므로 ‘성깔’도 함께 쓰면 좋겠다.
○ 뗑깡(てんかん) → 생떼, 투정, 행패, 어거지
‘뗑깡(てんかん)’은 일본식 한자어 ‘전간(癲癎)’을 일본말로 발음한 것이다. 본래 ‘전간’은 의학 용어로 ‘간질병(癎疾病)’이나 ‘지랄병’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어린아이가 심하게 투정을 부리거나 어떤 사람이 행패를 부릴 때 사용되고 있다. 또한 어거지를 써가며 우길 때도 이 말은 쓰이고 있다. 사실 지랄병을 일으키는 사람이나 생떼를 부리는 사람의 태도가 서로 비슷한 데서 온 말이겠지만, 본래의 뜻이 좋지 않으므로 이제는 이 말도 쓰지 말아야 한다. 상황에 따라 ‘생떼’, ‘투정’, ‘행패’, ‘어거지’ 등으로 바꿔 쓰면 좋겠다.
일본어 순화
기스(傷, きず) → 흠, 흠집
나래비(竝, ならび) → 줄서기
무뎃뽀(無鐵砲, むてっぱう) → 무모(無謀), 막무가내
소데나시(袖無, そでなし) → 민소매, 맨팔옷
우와기(上衣, うわぎ) → 윗도리, 상의, 저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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