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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신, 신명, 신바람> 어휘자료

by 61녹산 2023.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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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다
신나다

 

‘신(神) 난다’나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표현과 속담 등에서 엿볼 수 있듯 한국어에는 무속적인 요소가 짙게 배어 있다. ‘굿과 네오샤머니즘의 비교를 통한 한국어 교육 방안 연구’라는 논문으로 한국의 한 대학에서 국어국문학 석사학위를 받은 40대 미국인 남성이 어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이야기입니다. 전혀 다른 문화권의 남성이 한국의 무속(巫俗)을 소재로 석사 논문을 썼다는 게 눈길을 끌었는데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한국어 교육과 무속 문화의 접목을 시도했다는 게 특이했다.

하지만 사전에 따른다면 ‘신(神) 난다’는 표현은 잘못된 것입니다. ‘어떤 일에 흥미나 열성이 생겨 기분이 매우 좋아지다’는 뜻의 단어는 ‘신나다’(2014년 표준어로 등재)입니다. 여기서 ‘신’은 ‘귀신 神’이 아니라 ‘어떤 일에 흥미나 열성이 생겨 매우 좋아진 기분’을 뜻하는 순우리말인데요. 일상에서는 ‘신난다, 신바람 난다, 신명 난다’ 등으로 쓰이지요. ‘신’과 마찬가지로 ‘신바람’ ‘신명’도 순우리말입니다.

‘신’이 나기 위해선 우선 뭔가에 호기심이 생겨야 하고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틀에 박힌 생각이나 행동에 갇혀 산다면 새롭고 신날 일이 없지요. 이럴 때 스스로 변화를 주려는 노력이 필요한데요. 가끔은 좋아하지 않는 장르의 영화를 본다든지, 악기 연주에 도전해 보는 식이지요. 이런 식의 시도가 무미건조한 일상에 색다른 경험의 계기가 되고 생기도 불어넣지요.

새로운 경험을 통해 의외의 재미를 발견하는 순간 그 분야에 더 깊이 빠져들면서 신바람을 넘어 신(神) 들린 듯한 경지로도 들어갈 수 있으니 인용문에서처럼 ‘신(神) 난다’는 표현도 가능하겠지요.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무속신앙이나 민속학의 세계에서만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일상에서는 ‘신나게’ 살 궁리만 해도 충분합니다.

 

연진아&#44; 나 지금 되게 신나
연진아 나 신나

 

한국인 신이 나야 일을 하는 민족이라고 한다.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힘센 사람이 아무리 일을 시키려 해도 억지로 시키는 경우에는 절대로 안 한다. 반면에 제가 하고 싶은 일에 동기가 부여되면 신이 나서 식음을 전폐하고서도 해 낸다. 

 

''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손에 잡히는 것도 아니고, 보이는 것도 아니고, 느껴지는 것도 더더욱 아닌데 우리에게 적극적으로 무엇을 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흥겨워서 손뼉을 치면 

 

"신이 나서 손뼉을 친다."

 

라고 하고, 매우 즐겁게 놀면

 

"신나게 논다."

 

라고 한다. 즐거워서 어쩔 줄 모르는 사람에게 

 

"신에 겨워 어쩔 줄 모른다."

 

라고 한다. 그러니 ''은 흥겹고 즐거운 경우에 우리 마음속에 생기는 어떤 상태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한자어로 '흥(興)'과 비슷한 구실을 하는데 그보다는 더 본질적인 그 무엇이 신이다. 그것은 '신이야 넋이야'라는 말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말은 하고 싶은 말을 거침없이 쏟아 내는 태도를 빗대어 이르는 말이다. 

 

"대장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신이야 넋이야 무용담을 이어갔다."

 

라는 식으로 쓴다. 그렇다면 ''과 ''은 분명 서로 통하는 바가 있는 말이다. 

 

'신명'은 ''과 거의 같은 의미로 쓰이지만 '신명'에는 ''의 개념이 들어 있다. 멋들어진 흥취를 신명이라고 할 수 있다. '무당이 신명 나게 춤을 추었다.'라고 하면 무당이 신이 나게 멋스럽게 춤을 추었다는 말이다. '신명지다'는 신이 나고 멋들어짐을 나타낸다.

 

'신바람'은 신이 나서 몸을 마구 움직이는 기운을 가리킨다. 어깻바람이라고도 한다. 신바람이 나면 멋들어진 몸놀림이 함께한다. 그래서 자연히 엉덩이를 흔들고 활개를 치게 되며 고개를 쳐들게 된다. 경망스럽게 신명을 내는 것을 '신명을 떨다'로 표현한다. 

 

신, 신명, 신바람은 모두 사람으로 하여금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하게 민드는 소중한 요소이다. 그런데 이런 것과 정반대로 사람으로 하여금 울화통이 터지게 하거나 답답한 마음을 가지게 하는 경우가 있다. '억지'로 일을 시키거나, 억지로 일을 가로막을 때에 그렇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게 되는 상황을 '억지 춘향이'라고 한다. '억지가 사촌보다 낫다'는 속담으로 미루어 볼 때에 힘이 약한 사람은 힘 있는 사람에게 '억지'를 쓰면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힘 있는 사람이 힘 약한 사람에게 억지를 부리면 일의 능률이 사뭇 줄어든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신명
신명

 

한민족은 신이 많은 민족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 믿는 신이 많은 것이 아니고, 어떤 일을 함에 신명이 많다는 의미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신이 나서 하는 것보다 좋은 일은 없다. 일의 능률도 오르고, 흥도 나고, 놀라운 성취가 있기도 하다. 부모님은 아이들이 신이 나서 공부하기를 바라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공부는 신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는 게 신나고, 운동이 신난다. 하지 말라는 것일수록 신나는 게 많다.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종종은 어떤 일은 하라고 강요하면 오히려 신이 싹 사라지기도 한다.

신나는 것은 자발적이다. 억누르려 해도 눌러지지가 않는다. 신나는 음악이 나오면 어깨춤이 절로 나고 엉덩이가 들썩대고, 발은 벌써 박자를 맞추고 있다. 신나는 음악은 사실 ‘신이 나오게’ 하는 음악이다. 그러고 보면 신나게 하는 데는 음악만 한 게 없는 듯하다.

음악의 리듬이 내 몸의 리듬과 맞으면 참으로 즐겁다. 그리고 여러 사람의 리듬이 함께 맞으면 더 즐겁고 신이 난다. 신나는 것은 함께할 때 더 큰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그래서 함께 있어서 신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누구랑 함께 있으면 신이 나는가? 나랑 있으면 다른 사람도 신이 나는가? 

‘신나다’라는 말을 살펴보면 ‘신(神)이 나온다(出).’는 뜻이다. 반대의 경우는 ‘신이 들다’라는 말을 하는데 이는 주로 외부의 신이 내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일반인에게는 이런 능력이 없으므로 사제나 무당 등에게 신이 들어온다. 가끔 자신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신이 들어오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 ‘미친 사람’이라는 말을 하게 된다.

 

신바람
신바람


많은 종교에서 신들린 사람에게 퇴마의식을 행하게 되는데, 들어온 나쁜 신이나 마귀를 쫓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신들린 사람을 잘 치료하면 능력자(?)가 된다. 그만큼 신들린 것은 치료하기도 어렵다. 스스로 조절이 안 되고 자기도 모르는 기운에 이끌려 다닌다는 것은 힘들고 슬픈 일이다.

 나는 농담처럼 우리나라에는 신(神)이 많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저마다 신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속에서 신을 찾아야 신이 난다. 이건 종교적인 의미가 아니다. 어떻게 보면 에너지와 같은 것이다. 나를 깨우는 에너지는 내 속에 담겨있다. 아무리 신나는 일이라도 나와 맞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나를 동(動)하게 하지 못한다.

내가 슬픈데 아무리 흥겨운 노래가 나온다고 어깨가 들썩여지는가? 너무 마음이 아픈데도 빠른 비트의 음악을 들으면 신이 나는가? 이럴 때도 신이 난다면 타고난 음악가이거나 아니면 정신 줄을 놓은 경우(?)다. 내 속의 에너지를 잘 찾을 수 있다면 신나는 일이 훨씬 많아질 수 있다. 나를 들뜨게 하는 에너지는 무언가? 예술인가, 운동인가, 공부인가, 기술인가? 아니면 뜨거운 사랑인가?

내가 신이 나면 세상도 달리 보인다. 세상이 살맛나는 곳으로 바뀐다. ‘신 났네 신났어!’라는 말이 부정적으로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신나서 하는 일만큼 행복한 일도 없다. 한민족이 신명이 많은 민족이라면 그것은 자신 속에 있는 에너지를 즐거운 일에 쓸 수 있다는 의미이다. 긍정적인 힘이다. 그리고 혼자일 때보다는 여럿일 때 더 신이 난다면 그것은 서로의 에너지를 합쳐서 큰 힘을 발휘하는 능력을 갖추었다는 의미도 된다.

‘신출귀몰(神出鬼沒)’은 귀신처럼 나타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는 의미이다. 나는 이 말의 사용을 좀 바꾸고 싶다. 내 속의 신나는 에너지는 나타나게 하고, 나를 잃게 만드는 나쁜 에너지는 사라지게 되었으면 한다. 나는 글이 잘 써지고, 새로운 생각이 날 때 신이 난다. 내 속의 긍정적 에너지가 솟아난다. 지금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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