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는 어떤 일이 생기기 전에 또는 어떤 일을 하기에 앞서라는 뜻의 부사이다. 곧 구체적인 일이 벌어지거나 구체적인 행동을 하기 전을 상정할 때 쓰는 말이다. 먼저 준비하고 대비하면 탈이 없다는 지혜를 깨우치면서 이와 같은 부사를 마련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내가 제일 안되는, 그래서 나에게는 절실히 필요한 이 '미리미리'가 너무나도 절실하다.
미리는 15세기 문헌에도 지금과 같은 '미리'로 나온다. 미리에 대해서는 대체로 동사 '밀다(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반대쪽에서 힘을 가하다)'의 어간 '밀-'에 부사를 만드는 접미사 '-이'가 결합된 형태로 설명한다. 그러나 밀다와 같은 동사의 어간에 접미사 '-이'를 결합하여 부사를 만드는 방식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이러한 설은 좀 의심스럽다. 부사화 접미사 '-이'는 '길이, 멀리' 등에서 보듯 '길다, 멀다' 등과 같은 형용사의 어간과 주로 결합한다. 또한 동사 '밀다'의 의미와 부사 '미리'의 의미가 그렇게 가깝지 않다는 점도 이러한 설의 설득력을 낮춘다.
이보다는 '미리'를 형용사 '밀다'의 어간 '밀-'에 부사화 접미사 '-이'가 결합된 형태로 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그런데 문제는 형용사 '밀다'가 문헌에 나타나지 않고 현재 쓰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중세국어나 근대국어의 '민갑(민값 선금(先金) 훈몽자회 1527), 민빋(외상 신증유합 1576), 민며나리(민며느리 한청문감 1779), 민사회(데릴사위 역어유해 1690)' 등의 '민'을 '밀다'의 관형사형으로 보면 그 존재를 얼마든지 상정할 수 있게 된다.
민갑이 먼저 치르는 돈, 민며나리가 장래에 며느리로 삼으려고 관례를 하기 전에 미리 데려다 기르는 여자 아이, 민빋이 미리 지는 빚, 민사회가 장차 사위를 삼으려고 미리 데려다가 기르는 남자 아이라는 뜻이므로 이들에 보이는 민은 예선(豫先)이라는 의미를 공통으로 갖는다. 이러한 의미는 '미리'에도 포함되어 있다.
'민값, 민며나리, 민빋, 민사회'의 '민'이 '미리'와 어형이 유사하고 같은 의미를 공유하므로 '미리'와 같이 '밀다'와 관련된 어형으로 설명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곧 민은 본래 밀다의 관형사형이라는 것이다. '민'과 '미리'의 의미를 고려하면 밀다는 예선(豫先)하다 정도의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민'은 일찍이 접두사화 된 것으로 보인다. 관형사형이 접두사로 바뀌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다. 현대국어 사전에서는 '민갑, 민빋, 민며나리, 민사회' 등의 '민-'을 엣말로 분류하고, 미리 치른 또는 미리 데려온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로 기술하고 있다. 현대국어에 접두사 '민-'을 이용한 '민값, 민며느리'가 남아 있기는 해도 '민-'이 더 이상 새로운 단어를 만드는 데 관여하지 못하므로 사전에서 옛말로 분류한 것같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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