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1. 세상을 살다 보면 사람의 힘으로도 안 되는 일이 가끔 있잖아요. 그럴 때는 [겸손/겸허]하게 때를 기다리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2.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고 사람은 성숙할수록 [겸손/겸허]하게 된다.
<어휘>
겸손(謙遜) :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가 있음.
높은 산을 등정했을 때의 기쁨보다 내려올 때의 마음가짐을 겸손히 새겨 보자.
앞선 세대의 희생과 경륜에 대한 존중과 이들의 온축된 지혜를 배우려는 겸손한 자세가 아주 절실한 상황이다.
지나친 겸손은 오만과 통한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와 잘못을 저지른다. 영원히 용서받지 못할 죄인 따위는 없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조끔씩만 더 겸손해진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살기가 좋아질 것이다.
겸허(謙虛) : 스스로 자신을 낮추고 비우는 태도가 있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고집만 할 게 아니라 겸허한 자세로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되돌아보고 새 출발을 해야 한다.
국정의 최고책임자라면 국민의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반성해야 한다.
겸허는 자신의 능력을 가장하는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무리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능력대로 삶을 구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겸허는 일반적 정의에 따르면 다른 사람 앞에서 뻐기지 않는다는 점에서 대인관계의 덕목이지만, 각 개인의 차원에서는 결국 자기 조절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 무엇보다도 자아 찾기의 덕목인 것이다.
자식뻘의 제자 고봉 기대승(奇大升, 1527~1572)에게 퇴계 이황(李滉, 1501~1570)은 이렇듯 겸허하고 진지한 태도로 일관했다.
<해설>
겸(謙)은 겸손할 겸, 사양할 겸
손(遜)은 겸손할 손, 사양할 손
허(虛)는 빌허, 비울 허
겸손(謙遜)이 남을 높여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나추는 태도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면 겸허(謙虛)는 아는 체하거나 잘난 체하지 않고 삼가며 자기를 비우는 데 초점이 있다. 예컨대 "대자연과 신 앞에서 우리는 겸손햊ㄹ 수밖에 없다."라는 문장에서의 '겸손'을 보자. 대자연과 신이 유한(有限)한 우리 인간보다 높고 위대함으로 우리의 힘이나 능력을 내세울 수가 없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으며 거기에 맞설 수 없다는 뜻이 '겸손'에 담겨 있다. "정치가는 겸허하게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에서의 겸허는 정치가가 마음을 비우고 자신을 낮춰 국민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렇듯 겸손이 구체적인 행동이나 태도를 주로 나타낸다면, 겸허는 마음 자세를 주로 얘기한다. 겸허는 겸손에 앞서 이루어지는 내면이 마음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겸손의 반대말은 거만(倨慢), 오만(傲慢)이 되지만, 겸허의 반대말은 교만(驕慢)이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답>
1. 세상을 살다 보면 사람의 힘으로도 안 되는 일이 가끔 있잖아요. 그럴 때는 [겸손/겸허]하게 때를 기다리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2.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고 사람은 성숙할수록 [겸손/겸허]하게 된다.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예비후보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출마 이유나 각오 등을 밝히고 있다. “국민 여론에 답하기 위해 진지하고 겸손/겸허한 태도로 고민하겠다” “겸손/겸허한 마음으로 유권자 여러분의 평가를 받고자 한다” “더욱 겸손/겸허하고 정직한 자세로 선거에 임하겠다”와 같은 글을 볼 수 있다.
‘겸손’과 ‘겸허’는 비슷한 의미로, 혼용돼 쓰이기도 하지만 어감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 이 때문에 정확한 의미를 알고 구분해 쓰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욱 적확히 표현할 수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겸손’은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를 의미한다. ‘겸허’는 스스로 자신을 낮추고 비우는 태도를 나타낼 때 쓴다고 돼 있다. 이렇게 사전적 의미만 보면 구분이 쉽지 않으나 어디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지 파악하면 둘을 구분하는 데 도움이 된다.
‘겸손’은 남을 높여 자기를 낮추고 내세우지 않는 태도에 초점을 두고 있다. ‘겸허’는 잘난 척을 하지 않고 자기를 비우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다시 말해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을 땐 ‘겸허’를 쓴다.
또한 ‘겸손’은 구체적 행동을 표현할 때, ‘겸허’는 마음가짐을 얘기할 때 주로 쓰인다.
“국민 여론에 답하기 위해 진지하고 겸손한 태도로 고민하겠다”
“더욱 겸손하고 정직한 자세로 선거에 임하겠다”
에서는 자신을 낮추는 자세를 나타내므로 ‘겸손’이,
“겸허한 마음으로 유권자 여러분의 평가를 받고자 한다”
에서는 마음을 비우는 마음가짐을 나타내므로 ‘겸허’가 더 잘 어울린다.
겸손(謙遜) : 남을 높이고 제몸을 낮춤(modesty).
겸허(謙虛 ): 허심하게 자기를 낮춤(modesty).
국어사전에서 풀이하고 있으며, modesty:겸손·조심성·겸양·수줍음이라고 영한사전에서 풀이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커다란 특이점을 하나 발견 할 수 있다. 영한사전에서는 겸손과 겸허의 구별이 없을 뿐만 아니라 겸허라는 말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겸손의 풀이에는 가식적인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겸허의 풀이에는 마음을 비운다는 허심(虛心)을 전제로 하고 있다. 또 한 번 우리말의 우수성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중국의 남북조 시대 양나라의 초대 황제 양무제(梁武帝)는 세간에서 불심천자(佛心天子)라고 숭앙되는 사람이었다. 달마대사가 중국에 건너오자 수도 금릉의 궁중으로 모셨다. “나는 즉위 이래 절을 짓고 불상을 조성하고 스님을 공양하기를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이 했습니다. 어떤 공덕이 있습니까?” 달마대사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무공덕(無功德)’ 공덕이 없다는 말이다. 양무제는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 판단해 다시 물었지만 역시 똑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양무제는 자존심이 상했다. 달마대사 대답의 의미는 공덕을 바라고 하는 선행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며 삶에서 한없이 겸허해지라는 뜻이었다.
사람은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자신을 아는 자이고, 둘은 자신을 모르는 자이다. 자신을 아는 자는 겸손한 자이고, 자신을 모르는 자는 오만한 자이다. 그래서 오만은 우리의 삶을 왜곡시키는 치명적인 것이 된다.
중국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 중 하나가 춘추시대의 오나라와 월나라 간의 다툼이다. 월나라 구천과 오나라 합려와 부차의 역전을 거듭하는 20여 년간의 대장정에서 다양한 고사가 나왔다. 이를 함축한 고사성어 와신상담(臥薪嘗膽: 가시나무 위에서 자고 곰 쓸개를 핥으면서 패전의 굴욕을 되새겼다는 말)은 오만에 대한 경고 그 자체이다. 경고의 메시지는 ‘오만 한 자는 패하고 겸허한 자는 승리한다’오만의 문제점은 오만에 빠지면 무엇보다 현실감각이 방향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지난 2008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리만 브러더스의 파멸은 오만한 경영진의 태도가 주원인이라는 진단이다. 창업한 지 160년이나 되는 공신력 높은 국제금융회사가 단 몇 사람의 오만한 태도 때문에 일거에 무너진 것이었다.
우리가 이해할 것은 겸허와 겸손은 다르다는 것이다. 겸손은 표면적이고, 겸허는 내면적이다. 겸손은 세속적인 말이고, 겸허는 종교적인 차원의 말이다. 겸손은 누구나 가장할 수 있다. 겸허는 가장하지 못한다. 겸손은 누구나 흉내 낼 수 있다. 겸허는 흉내가 불가능한 경지이다. 그래서 겸손한 척한다는 말은 있어도 겸허한 척한다는 말은 없다.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 것은 오래가지 못하는 법이다.
겸손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진정한 겸손, 즉 겸허가 하나, 겸손한 척하는 것이 둘이다. 둘 다 겸손을 표방한다. 척하는 것은 처세의 덕목일 뿐이다. 속으로는 오만하면서 겉으로는 겸손한 척하는 것이다. 겸손의 진정한 가치를 모르는 것은 오만한 자와 마찬가지다. 이들은 겸손을 내세움으로써 남들의 호의를 얻고자 한다. 남들과의 경쟁을 회피하면서 기회를 엿보려는 비겁함과 나약함을 겉으로 보이는 겸손 속에 숨긴다. 진정한 겸손, 즉 겸허는 처세론적 덕목이 아니라 존재론적 차원의 얘기다. 인간의 심성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근원적인 문제라는 말이다. 겸허한 자의 생활방식은 겸손한 척하는 사람과 크게 다르다. 이들은 항상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며 자기반성으로 수양을 쌓으면서 신독(愼獨)하며 자기를 절제 한다.
‘주역(周易)’에서 겸손을 뜻하는 괘는 커다란 수확을 뜻하는 대유괘(大有卦) 다음에 나온다. 대유괘는 큰 것을 자진 자는 자만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 다음이 겸괘(謙卦)이다. 주역 64괘 중 아마도 가장 좋은 괘일 것이다. 이를 지산겸(地山謙)이라 하며 땅 밑에 산이 있음을 상징한다. 땅속에 산이 들어간 모습으로, 마음속에 잘난 척하는 마음이나 남보다 뛰어난 재주 등을 다 감추어버린 형상이다. 춘추시대 제나라 관중이 쓴‘관자(管子)’에서는 ‘자신을 아는 자는 겸허하다’라고 했다. 그것은 현명이다. 세상에 현자가 많지 않다는 것은 자신을 아는 사람이 적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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