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에서는 어떤 형태소의 음운이 조건에 따라 다른 음운으로 바뀌는 현상을 자주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같은 ‘꽃’이라는 형태소를 단독으로 발음할 때에는 받침의 ‘ㅊ’ 소리를 내지 않고 이를 ‘ㄷ’ 소리로 바꾸어 [꼳]이라고 발음하고, 그 뒤에 모음으로 시작되는 형태소가 오면 [꼬츨]처럼 소리를 내는가 하면, 뒤에 ‘만’이라는 조사가 오면 ‘꽃만(→ 꼳만 → 꼰만)’에서 보듯이 [꼰]으로 발음한다. 이처럼 어떤 형태소가 다른 형태소와 결합할 때, 그 환경에 따라 발음이 달라지는 현상을 음운의 변동(變動)이라고 한다.
음운의 변동에는 어떤 음운이 형태소의 끝에서 다른 음운으로 바뀌는 교체(交替), 한쪽의 음운이 다른 쪽 음운의 성질을 닮는 동화(同化), 두 음운이 하나의 음운으로 줄어드는 축약(縮約), 두 음운 중에서 어느 하나가 없어지는 탈락(脫落), 형태소가 합성될 때에 그 사이에 음운이 덧붙는 첨가(添加) 등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음운의 변동은 표준어의 발음에서 모두 허용되는 것은 아닌데, 그중에서 허용되는 것만을 규범화한 것이 ‘표준어 규정’의 ‘표준 발음법’이다.
1. 음절의 끝소리 규칙
국어에서 음절의 끝에서 발음되는 자음은 ‘ㄱ, ㄴ, ㄷ, ㄹ, ㅁ, ㅂ, ㅇ’의 일곱 개뿐이다. 따라서, 음절 끝에 이 일곱 소리 이외의 자음이 오면 이 일곱 자음 중의 하나로 바꾸어 발음한다. 이러한 음운의 교체 현상을 음절의 끝소리 규칙이라고 한다. 가령,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낟, 낫, 낮, 낯, 낱’과 같은 단어들을 읽어 보라고 하면, 다 똑같이 [낟]이라고 발음한다. 그러나 다시 이 단어들 뒤에 모음으로 시작하는 형식 형태소가 오면 ‘낫으로[나스로]’와 같이 앞 단어의 받침에 있던 소리들을 살려 낸다. 반면, ‘꽃 위[꼬뒤]’처럼 받침 뒤에 모음으로 시작하는 실질 형태소가 오면 위 규칙을 따른다.
이것은 두 개의 자음으로 이루어진 겹받침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즉 겹받침은 모음으로 시작하는 형식 형태소를 만나면, ‘흙이[흘기], 없어[업써]’처럼 뒤의 자음이 다음 음절의 첫소리로 이어져 발음된다. 그러나 ‘흙[흑]’과 같이 단독으로 발음되거나 ‘흙도[흑또], 없다[업따]’와 같이 자음으로 시작하는 말 앞에서는 두 자음 중에서 하나만 발음되는데, 이때 발음되는 것은 위 일곱 개의 자음 중의 하나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국어의 음절 구조상 첫소리나 끝소리 위치에 하나의 자음밖에 올 수가 없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2. 음운의 동화
(1) 자음 동화
음절의 끝 자음이 그 뒤에 오는 자음과 만날 때, 어느 한쪽이 다른 쪽 자음을 닮아서 그와 비슷한 성질을 가진 자음이나 같은 소리로 바뀌기도 하고, 양쪽이 서로 닮아서 두 소리가 다 바뀌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을 자음 동화(子音同化)라고 한다. 대표적인 자음 동화 현상으로는 비음화(鼻音化)와 유음화(流音化)가 있다.
(2) 구개음화
끝소리가 ‘ㄷ, ㅌ’인 형태소가 모음 ‘ㅣ’나 반모음 ‘’로 시작되는 형식 형태소와 만나면 그 ‘ㄷ, ㅌ’이 센입천장소리 ‘ㅈ, ㅊ’이 되는데, 이러한 현상을 구개음화(口蓋音化)라고 한다. 구개음화는 자음이 모음의 성질을 닮아 변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동화 현상에 속한다. 말할 때에는 이렇게 센입천장소리로 바뀐 발음을 표준 발음으로 인정하는 경우가 많다.
(3) 모음 동화
모음과 모음 사이에서도 동화 현상이 일어난다. 이를 모음 동화(母音同化)라고 한다. 앞 음절의 후설 모음 ‘ㅏ, ㅓ, ㅗ, ㅜ’는 뒤 음절에 전설 모음 ‘ㅣ’가 오면 이에 끌려서 전설 모음 ‘ㅐ, ㅔ, ㅚ, ㅟ’로 변하는 일이 있다.
아비 → [애비] 잡히다 → 자피다 → [재피다]
아지랑이 → [아지랭이] 어미 → [에미]
먹이다 → 머기다 → [메기다] 고기 → [괴기]
속이다 → 소기다 → [쇠기다] 죽이다 → 주기다 → [쥐기다]
위와 같은 동화 현상은 ‘ㅣ’ 모음 앞에 입술소리나 여린입천장소리가 놓일 때에 잘 일어난다. 그런데 이와 같이 변한 발음은 표준 발음으로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냄비, 멋쟁이, (불을) 댕기다’처럼 표준어로 인정하는 경우도 있다.
한편, ‘ㅣ’의 뒤에 후설 모음 ‘ㅓ, ㅗ’가 오면 ‘ㅣ’의 영향을 받아 각각 ‘ㅕ, ㅛ’로 바뀌는 일이 있는데, 역시 표준 발음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기어 → [기여] 먹이었다 → [머기엳따]
미시오 → [미시요] 당기시오 → [당기시요]
다만, ‘되어, 피어, 이오, 아니오’의 경우는 [어]와 [오]로 발음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여]와 [요]로 발음하는 것도 허용한다.
⑷ 모음 조화
국어의 모음들은 같은 종류의 모음끼리 어울리려는 경향이 있다. 양성 모음 ‘ㅏ, ㅗ’는 ‘ㅏ, ㅗ’끼리, 음성 모음 ‘ㅓ, ㅜ, ㅡ, ㅣ’는 ‘ㅓ, ㅜ, ㅡ, ㅣ’끼리 어울리려는 현상을 모음 조화(母音調和)라고 한다. 용언의 어미가 ‘-아/-어’, ‘-아서/-어서’, ‘-아도/-어도’, ‘-아야/-어야’, ‘-아라/-어라’ 및 ‘-았-/-었-’ 등처럼 두 가지씩 있는 것도 모음 조화로 말미암은 것이다. 모음 조화 현상은 모음 동화의 일종으로, 국어의 중요한 특질 중의 하나이다.
깎아 깎아서 깎아도 깎아라 깎았다
먹어 먹어서 먹어도 먹어라 먹었다
비어 비어서 비어도 비어라 비었다
모음 조화 현상은 의성어와 의태어에서 가장 뚜렷이 나타난다. 그런데 모음 조화 현상은 현대로 오면서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져 표기법에도 영향을 주었다. ‘가까워, 아름다워’와 같은 ㅂ불규칙 형용사나 ‘깡충깡충, 오순도순, 오뚝이, 소꿉질’과 같은 예가 그것이다.
3. 음운의 축약과 탈락
(1) 축약
‘ㅂ, ㄷ, ㅈ, ㄱ’과 ‘ㅎ’이 서로 만나면 ‘ㅍ, ㅌ, ㅊ, ㅋ’이 된다. 이와 같이 두 음운이 합쳐져서 하나의 음운이 되는 것을 축약(縮約)이라고 한다.
좋고 → [조코] 많다 → [만타]
옳지 → [올치] 잡히다 → [자피다]
닫히다 → 다티다 → [다치다] 먹히다 → [머키다]
(2) 탈락
앞뒤 형태소의 두 음운이 마주칠 때, 그중의 한 음운이 완전히 탈락(脫落)하는 일도 있다.
가-+-아서 → 가서 서-+-었-+-다 → 섰다
쓰-+-어라 → 써라 울-+-는 → 우는
짓-+-으니 → 지으니 살-+-니 → 사니
‘ㅎ’을 끝소리로 가지는 어간은 모음으로 시작하는 어미나 접미사 앞에서 ‘ㅎ’이 탈락한다.
좋은 → [조ː은] 넣어 → [너어]
쌓이다 → [싸이다] 끓이다 → [끄리다]
4. 사잇소리 현상
국어 단어 중에는 두 개의 형태소 또는 단어가 합쳐져서 합성어가 될 때, 뒤의 예사소리가 된소리로 변하는 일이 있다. 이러한 현상을 사잇소리 현상이라고 한다. 이를 표시하기 위하여 합성어의 앞말이 모음으로 끝났을 때에는 받침으로 사이시옷을 적어야 한다. 다음은 이러한 사잇소리 현상이 일어나는 예이다.
촛불(초+불) → [초뿔] 뱃사공(배+사공) → [배싸공]
밤+길 → [밤낄] 촌+사람 → [촌싸람]
등+불 → [등뿔] 길+가 → [길까]
그런데 이런 현상을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뚜렷한 규칙을 아직 찾기가 어렵다. 그 이유는, 비슷한 조건인데도 다음과 같이 사잇소리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 합성 명사도 있기 때문이다.
은+돈 → [은돈] 콩+밥 → [콩밥]
기와+집 → [기와집] 오리+발 → [오리발]
말+방울 → [말방울] 고래+기름 → [고래기름]
한자(漢字)로 이루어진 합성어의 경우에도 사잇소리 현상이 나타나는 일이 많지만, 대부분 사이시옷을 표기하지는 않는다.
초점(焦點) → [초쩜] 문법(文法) → [문뻡] 물가(物價) → [물까]
다만, 다음 여섯 개의 한자어에는 사이시옷을 적는다.
곳간[庫間] 셋방[貰房] 숫자[數字] 찻간[車間] 툇간[退間] 횟수[回數]
한자어의 사잇소리 현상도 규칙성을 찾기가 어려워 다음과 같은 단어는 사잇소리를 넣어 발음하면 표준 발음으로 인정하지 아니한다.
방법(方法) → [방뻡](X) 고가(高架) → [고까](X)
간단(簡單) → [간딴](X) 등기(登記) → [등끼](X)
성어를 이룰 때, 앞말이 모음으로 끝나고 뒷말이 ‘ㅁ, ㄴ’으로 시작되면 ‘ㄴ’ 소리가 첨가되고, 앞말의 음운과 상관없이 뒷말이 모음 ‘ㅣ’나 반모음 ‘’로 시작될 때에는 ‘ㄴ’이 하나 혹은 둘이 첨가되는 일이 있는데, 이러한 현상도 사잇소리 현상의 하나이다.
잇몸(이+몸) → [인몸] 콧날(코+날) → [콘날]
집+일 → 집닐 → [짐닐] 부엌+일 → 부억닐 → [부엉닐]
솜+이불 → [솜니불] 논+일 → [논닐]
콩+엿 → [콩녇] 물+약 → 물냑 → [물략]
두 단어를 한 마디로 이어서 발음할 때에도 이와 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
한 일 → [한닐] 옷 입다 → [온닙따]
할 일 → 할 닐 → [할릴] 잘 입다 → 잘닙다 → [잘립따]
먹은 엿 → [머근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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