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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내일에 대응하는 순 우리말이 없다.

by 61녹산 2023.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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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피 : 모레의 다음 날
글피 : 모레의 다음 날

 

 

수천 년 동안 한자 말의 영향 속에서도 우리는 용케 우리말을 지켜왔다. 대견하고도 통쾌한 일이다 통계를 봐도 빈도 수가 가장 많은 1백 개의 한국말 가운데 한자 말이 차지하고 있는 것은 고작 16개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웬일인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 가운데 하나인 '내일'만은 한자 말인 내일(내來日)에서 온 것이다. 어제도 오늘도 다 순수한 우리말인데 어째서 미래를 뜻하는 내일만은 한자어에 먹히고 말았을가?

 

그동안 수많은 언어학자들이 온갖 노력을 다 해봤지만 한글로 된 문헌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었고 다만 화석처럼 "명일 왈 할재(明日 曰 轄載)"라는 한 조각 기록이 계림유사에 남아 있을 뿐이다. 그래서 몇몇 국어학자들은 '내일'의 순수한 우리말은 '올재'였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그런데 '재'라는 말은 주로 어제니, 그제니 하는 말처럼 과거를 가리키는 것임으로 올재에서 재가 떨어져나가 그냥 '올'이라고도 불렀을 것 같다. 올 봄이니 올해니 할 때의 그 '올'이 그것이다. 

 

그러나 내일의 우리 고유어를 일본의 지방 명에서 찾아보려고 시도하는 사람도 있다. 한국인들이 건너가 꽃피운 6세기 때의 일본 문화를 비조 문화(飛鳥文化)라고 한다. 그런데 한자로는 비조라고 써놓고 읽기는 '아스카'라고 한다 '아스'는 일본 말로 내일을 뜻하는 말이다. 그래서 그것을 명일향(明日香)이라고도 표기하는데 향(香)은 일본 말로 '가오리'이므로 고을을 뜻하는 한국말과 음이 같다

 

어째서 뜻이 전연 다른데도 이렇게 비조라는 고을 이름이 명일향과 동의어로 쓰였느냐 하는 수수께끼는 그것을 한국말로 읽어보면 금세 풀린다는 것이다.  비조는 공중을 나는 새, 즉 '날 비(飛), 새 조(鳥)'로 '날새'이다. 그리고 날새는 날이 샌다는 뜻으로 내일을 뜻하는 순수한 한국말이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니까 내일을 뜻하는 한국말 날새를 음으로 적으면 비조가 되고 뜻으로 표기하면 명일향이라는 주장이다. 

 

내일이라는 순수한 우리말이 '올재'였는지, '날새'였는지 우리는 모른다. 다만 확언할 수 있는 것은 중국 대륙에 끼어 살다가 그 좋은 말을 도중에서 잃어버렸다는 애잔한 사실뿐이다. 바다 넘어 남의 땅에 가서야 비로소 내일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었던 아스카 문화의 한국인들, 그 예술인들, 장인(匠人)들.

 

며칠 전 예술의 전당에서는 천재 소녀 장영주 양의 바이올린 연주를 들으면서 '사라 장'이 아니라 '장영주'로서 이 땅에서 자랐더라면 과연 저렇게 푸르고 싱싱한 그 내일을 표현할 수가 있었을까? 무대 위의 사라 장만이 아니라 객석에 앉아 있는 우리 꼬마 예술가들에게는 그런 내일이 없는 것일까? 내일은 한자 말이지만 그보다 더 먼 모레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모레라는 말뿐이겠는가? 모레 다음에 글피가 있고 글피 다음에는 또 그글피가 잔뜩 대기하고 있다. 일본어든 영어든 한번 해보라. 내일이란 말 다음에 모레를 뭐라고 하는가? 글피와 그글피란 말이 도대체 있냐 이 말이다. 

 

힘내라! 한국의 천재들이여. 눈을 돌려 미지의 넓은 땅과 먼 내일을 보라. 더 먼 모레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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