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우리말

민(民 백성 민)의 어원분석

by 61녹산 2023. 8. 9.
반응형

눈을 찔러 멀게 하다 : 민
눈을 찔러 멀게 하다 : 민


 

한자 가운데 백성 민(民) 자처럼 가치가 급등한 글자도 드물 듯하다. 그렇게 서로 다른 정치 체제를 갖고 으르렁대기만하면서도 '대한민국'에도 '민'자가 들어 있고 북한의 '조선인민민주주의 공화국'에도 민 자가 들어 있다. 거기에 민자당, 평민당, 민주당... 여, 야 가리지 않고 역대 정당 이름에도 민 자가 떡하니 붙어 있지 않는 당이 없을 정도이다. 민 자를 내걸지 않고는 나라도 정당도 꾸려갈 수 없는 지경이 되어 버렸다. 그러니까 요즘 다른 권위는 다 떨어져도 '민주화'의 '민' 자와 '문민정부'의 그 '민'자만은 새로운 권세와 실세의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후한 말기의 <설문(說文)>에서 풀이한 '민' 자를 보면 이 글자가 오늘날 왜 이렇게까지 큰 대접을 받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민 자는 어머니의 모(母)자에 한 일 자를 어우른 글자라 설명되어 있다. 즉 어머니의 한 뱃속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미 민주주의의 평등 원리와 민중의 동질성이 민이라는 한 글자 안에 분명하고도 또렷하게 담겨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라 국(國)자의 약자로 흔히 네모난 사각형 속에 왕(王)자를 쓰는데 이제는 민주주의 시대이니 그 왕(王)자를 민(民)로 바꿔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생겨난 듯하다.

 

하지만 20세기 초 은나라 때의 갑골 문자가 발견되면서부터 한자의 기원에 대한 그간 가려져만 왔던 신비한 장막들이 한 겹 두 겹 들추어지기 시작했고 그 결과로 민 자의 충격적인 정체 또한 고스란히 드러나고 말았다. 갑골 문자에 나타난 민의 옛 글자 모양을 보면 어머니는 물론 한 일 자와도 아무 관련이 없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모 자라고 생각했던 부분은 사람의 눈 모양을 그린 것이고 한 일 자라고 생각했던 것은 날카로운 꼬챙이 모양을 나타낸 것이었다. 그러니까 백성 민 자의 진짜 뜻은 쇠꼬챙이로 사람의 눈을 찌르고 있는 잔악하고 잔인한 장면을 상형한 글자였다. 눈을 쇠꼬챙이로 찌르면 어떻게 되는가. 두말할 것 없이 앞을 못 보는 맹인이 될 것이다. 그것이 옛날 노예를 만드는 방법이었다. 눈먼 노예는 도망갈 수가 없다. 그리고 눈을 가린 망아지가 연자방아를 돌리고 있는 것처럼 앞을 보지 못하는 노예들은 한눈을 파는 일없이 시키는 일만 묵묵히 하게 된다. 그러니까 민 자는 바로 성경에 나오는 그 삼손처럼, 눈을 멀게 한 노예를 뜻하는 글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민 자가 들어간 한자들을 보면 예외 없이 눈이 감긴 상태를 나타낸다. 눈을 감고 자는 수면(睡眠)의 그 면자가 바로 눈 목 변에 백성 민 자를 붙인 글자이다. 마르크스가 아시아적 생산 양식이라고 불렀던 중국의 고대 노예 사회의 원풍경이 바로 이 민이라는 그자 속에 화석처럼 그 흔적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백성민
백성민

 

고대 노예 사회로 거슬러 올라갈 것 없이 논어에 나타나는 민 자만 보더라도 결코 좋은 뜻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민은 선비[士]와 구별되는 계층으로 일이나 시키는 무지한 천민들을 지칭하는 문자였다. 어디에도 평등이니 동포애니 하는 따뜻한 온기는 찾아볼 수 없다. 오늘날 이 민 자가 우리에게 충격을 던져주는 것은 수천 년 전의 갑골 문자 시대 때의 문화적 화석이 아니라, 바로 지금의 생생하게 살아 있는 문자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개명 천지에 어디에 눈알을 빼낸 노예들이 남아 있겠느냐고 할지 모르나 개명 천지일수록 눈을 잃고 헤매는 민들은 불어나기 쉽상이다. 왜냐하면 정보화 사회라는 것은 정보가 바로 민의 눈이기 때문이다. <1984년>이라는 조지 오웰의 가상 소설 속에 등장하는 백성들은 고도로 발달한 정보 기기에 의해 일거수일투족 통치자들의 감시를 받는다. 그리고 우리는 소설이 아니라 실제 상황으로서 붕괴한 구소련이나 동구권의 사회주의자들이 바로 눈먼 '민'을 만들어냈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당에서는 정보를 독점하고 일반 국민들에게는 거꾸로 정보를 통제하는 이중 장치로 이른바 보통 '인민'들의 철의 장막이나 죽의 장막의 눈가리개 속에서 살아왔던 것이다. 안드로포프가 죽었을 때 서방 측에서는 그에게 부인이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장례식에 나온 부인을 보고서야 비로소 그에게 부인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충격에 빠진다. 그가 신장이 나빴으며 심장병을 앓고 있었다는 것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다만 정상 회담 등에 출석한 그의 얼굴이 메이크업 베이스를 하고 있었다는 것, 손이 떨린다는 것 등으로 그의 건강이 악화되었다는 것을 추정했을 뿐이라고 한다. 밖에서만 몰랐던 것이 아니라 이른바 인민의 나라인 소련의 인민들도 까마득하게 모르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페레스트로이카의 기수 고르바초프가 새 바람을 일으켰던 시절에도 신문에 그의 사진을 게재할 때에는 그 유명한 이마 위의 세계 지도 같은 점박이를 수정해야만 했다. 그래서 이른바 그 위대한 인민들의 눈은 고르바초프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도록 가려져 있었던 셈이다. 반은 우스갯소리겠지만 한때 구소련의 아나운서들은 스포츠 중계를 하는데도 사실 보도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소련제 스포츠카가 카 레이스에서 꼴찌로 달리고 있는데도 중계 아나운서들은 이렇게 방송을 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소련 차가 질주를 시작했습니다. 앞에도 뒤에도 다른 나라의 차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옐친이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릴 때마다 두고두고 꺼내는 비장의 보도가 바로 그 민 자 풀이다. 

 

"국민의 눈을 속인 기만 정치, 국민의 눈을 도려낸 그 맹목의 압제, 이 구체제로 돌아가지 맙시다."

 

옛날의 그 눈먼 민으로 돌아가지 말자는 호소다. 그래서 그 나라의 민주주의의 눈높이를 재는 잣대는 정보 통신 기기의 보급률로 확인할 수 있다. 그 한 예로 전화 보급 대수를 가지고 민주주의의 선두 그룹은 미국, 스위스, 스웨덴이고 그 다음이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등이다. 이른바 G7에 들어가 있는 선진국들은 예외없이 전화 선진국들이다.

 

남한과 북한의 차이도 경제적인 것보다는 이 정보 통신 분야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현재 북한의 전화 보급률을 남한의 5% 수준이라고 하니 한심하기까지 한다. 가입 전화 시설은 모두 82만 선인데 그나마 평양에만 집중되어 있고 그것도 공공 기관과 당 간부용일뿐이다. 개인 전화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지경이다. 공중전화라고 해도 세계청소년대회가 열렸을 때에 평양 거리에 잠시 등장했다가 대회가 끝난 뒤 곧 자취를 감춰버렸다고 일본의 시사 주간지 <아에라>가 전하고 있다. 그래서 이른바 북한 동포들이 꿈에 그린다는 '오장 육기(오장 육부를 풍자적으로 빗댄 것으로 오장은 옷장, 찬장에서 냉장고 등 다섯 가지 장이고 기는 녹음기 전화기 텔레비전 수상기 등 여섯 가지 전자 기기들이다)'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전화기라는 것이다. 

 

북한을 탈출한 탈북자 가운데 한 사람은 외국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광주 사건을 보도한 텔레비전 방송에서 처음 남한 도시 풍경을 보았는데, 그 때 상점들 간판마다 길게 써놓은 전화번호를 보고 비로소 지금까지 자기가 속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북한 동포들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은 배고픈 굶주림이 아니라 정보의 기아이며 그 허기증이다. 최근 호주의 <파이낸셜 리뷰> 지의 엘릭 엘리즈 기자는 북한의 지식인들은 인간이 달에 착륙한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충격적인 보도를 하고 있다. 

 

민이 이렇게 정보에 어두우면 어떻게 되겠는가? 태평양 전쟁 말기에 상공부에 들어간 관리 한 사람이 털어놓은 고백이 생각난다. 그는 말단의 자리에 있었는데도 곧 전쟁이 끝나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고 한다. 왜냐하면 비행기 윤활유의 재고량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윤활유가 없으면 비행기가 뜰 수 없고 비행기가 뜰 수 없으면 전쟁은 이미 끝장인 것이다. 당시 일본에는 지상에서는 섭씨 30돋 이상, 하늘에서는 영하 10도에서 굳거나 녹지 않는 고품질의 윤활유를 만들 기술이 없었다. 그래서 전쟁 전에 미국에서 다량으로 구입해 온 윤활유에 의존하고 있던 형편이었는데, 그 재고가 다 떨어져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루 전투에 들어가는 윤활유의 소비량에다가 재고량을 나누어 보면 패전까지 몇 달 며칠이라는 정확한 예측을 하기는그리 어렵지 않은 것이었다. 그런데도 아무것도 모르는 국민들은 가미가제 특공대의 신화 속에서 필승의 환상을 안고 살아갔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는 수천 수만 가지다. 그러나 정보화 시대의 민주주의란 단 한 가지로 요약될 수가 있다. 온 국민이 다 같이 정보를 공유하고 사는 것,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다. 군주제로부터 시작해서 나치, 공산주의 등 망해 버린 나라의 공통점은 국민의 눈을 멀게 한 데 있다. 개방의 시대는 시장의 개방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개방은 개안으로 모든 사람이 눈을 뜨고 밝은 세상을 보는 데 있다. 요즘 윤 정부의 언론을 대하는 자세, 국민을 대하는 자세가 자꾸 불안해지고 억울해지고 씁쓸해진다. 이러다 진짜 나라가 망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