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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도토리의 어원자료

by 61녹산 2023.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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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
도토리

 

 

너도밤나무과의 신갈나무·떡갈나무·갈참나무·졸참나무, 그리고 이들 사이에서 생긴 많은 변종의 열매를 모두 도토리라고 한다. 참나무속의 식물은 상록 또는 낙엽교목인데 드물게 관목인 경우도 있다. 잎은 어긋나고 우상 맥(羽狀脈:깃털 모양의 맥)이 있으며 톱니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다. 수꽃은 가늘고 길며 드리워지는 미상화서(尾狀花序:꼬리모양의 꽃차례)를, 암꽃은 한두개씩 피며 많고 짧은 수상화서(穗狀花序:이삭모양의 꽃차례)를 이룬다. 열매는 구형 또는 원주형의 견과로 하반부 또는 기부가 술잔모양의 깍정이로 싸여 있는데 그 바깥에는 비늘모양의 돌기가 나 있다. 종류는 북반구의 온대·난대·아열대에 걸쳐서 200여 종이 있다. 우리 나라에는 13종의 참나무속 식물이 있는데 주종을 이루는 것은 신갈나무이다.

 

도토리는 예로부터 구황식물로 이용되었는데, 주로 묵으로 가공한다. 도토리묵은 과거에는 구황식이었으나 지금은 별식으로 이용되고 있다. 도토리묵을 만들려면 우선 도토리의 껍질을 까서 말린 다음 절구로 빻아 4∼5일 동안 떫은맛을 우려낸다. 이때 물을 여러 번 갈아주는 것이 좋다. 떫은 맛이 어느 정도 빠지면 윗물을 따라내고 가라앉은 앙금을 걷어내어 말린다. 도토리가루와 물을 1:3의 비율로 섞어서 끓이면 엉기게 되는데 이를 식히면 묵이 완성된다.

 

마음이 맞으면 도토리 한 알을 가지고도 시장을 멈춘다.

 

위 속담은 아무리 가난하여도 서로 마음이 맞으면 모든 역경을 잘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도토리는 아주 조그마한 것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개밥에 도토리

 

라는 속담은 따로 떨어져서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을 이른다. 개는 도토리를 먹지 않기 때문에 밥 속에 도토리가 들어가도 남기므로 생긴 속담이다. 

 

도토리 키재기

 

라는 속담은 하잘것없는 재주를 가지고 서로 낫다고 다투는 것을 비유하는 것이다. 경상도지방에서는 꿈에 도토리나무를 보면 행운이 온다고 믿고 있으며, 서울지방에서는 임신 중에 도토리묵을 먹으면 유산한다는 속신이 있다.

 

이렇게 우리의 언어생활에도 친숙한 도토리는 원래 ‘떡갈나무’의 열매만을 가리키던 것이었는데, 이제는 상수리나무에 열리는 ‘상수리’까지도 ‘도토리’라고 불러서, 시골 사람들은 ‘상수리’와 ‘도토리’를 구분하지만, 도시 사람들은 그 차이를 구별하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도토리’는 언뜻 보아 그 깍정이가 도톨도톨해서 ‘도톨도톨’의 ‘도톨’에 명사형 접미사 ‘-이’가 붙어 만들어진 것으로 보는 사람이 꽤나 많은 듯하다. 그러나 사실상 도토리는 나무에 달려 있을 때 도토리의 밑을 싸받치는 도토리 깍정이가 오돌도톨하지, 그 도토리 받침에서 나온 알맹이는 오히려 매끈매끈하다. ‘그 사람이 도토리 같다’고 하면 키가 작은 것을 연상하지만 오돌도톨해서 거친 듯한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키는 작지만 깎은 듯이 세련된 인식을 준다. 도토리가 ‘도톨도톨하다’는 인식은 아마도 그 이름으로부터 민간어원설로 유도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도토리’는 『향약구급방』(1417년)이란 문헌에 처음 등장하는데, ‘저의율(猪矣栗)’로 나타난다. 이것은 한자를 빌려 쓴 차자 표기 형태인데, ‘저’(猪)는 오늘날의 ‘돼지’를 뜻하는 ‘돝’을, 그리고 ‘의’(矣)는 음으로 읽어서 속격 조사의 ‘-’나 ‘-의’를, 그리고 ‘율’(栗)은 그 뜻대로 ‘밤’을 표기한 것이어서, ‘저의율(猪矣栗)’은 ‘도밤’으로 해석된다. 그 뜻은 ‘돼지의 밤’이니 ‘돼지가 (즐겨 먹는) 밤’이란 뜻이다. 도토리는 다람쥐나 먹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어서 돼지가 도토리를 먹는다고 하면 이해하지 못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북한의 『조선말대사전』에 “참나무에서 떨어지는 도토리 멧돼지가 먹으면 멧돼지 것이고 다람쥐가 먹으면 다람쥐 것이다.”란 문장이 실려 있을 정도로 멧돼지가 즐겨 먹는 것 중의 하나가 ‘도토리’인 것이다.


 ‘멧돼지가 먹는 밤’이란 뜻으로 만들어진 ‘도태밤’은 15세기에 ‘도토밤’과 ‘도톨왐’으로 나타난다.

 

시난 四明ㅅ 누네 듧고 주으려 楢溪옛 도토바말 주스니라 (履穿四明飢拾楢溪橡) <두시언해(1481년)> 

해마다 도톨왐 주스믈 나발 조차 단뇨니(歲拾橡栗隨狙公) <두시언해>

 

‘도토밤’이나 ‘도톨왐’에서 ‘밤’을 획인할 수 있고, 한문 원문의 ‘상율(橡栗)’에서도 ‘밤’이 확인된다. ‘도토밤’은 ‘도태밤’의 변화형으로 보인다. 다른 어휘에도 그러한 변화가 보이기 때문이다. ‘명아주’를 뜻하는 ‘도태아랏, 도랏’이 ‘도토랏’으로도 나타나는 현상이 있어서 그러한 추정을 가능케 한다(‘토태아랏’도 ‘’과 연관될 것으로 추정된다).

 

도태아랏과 팟닙과 먹고 <삼강행실도(1471년)>

도토랏 막대 디퍼 뇨미<두시언해(1481년)>

 

그리고 ‘도토밤’이 ‘도톨왐’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밤’이 ‘밤(ㅂ순경음)’이 되고 이 ‘밤(ㅂ순경음)’이 ‘왐’으로 변화한 예는 음운론적으로 설명이 가능하지만, ‘도토’에 ‘ㄹ’이 들어간 사실은 음운변화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도토밤’이 ‘도톨밤’으로 변화하면서 ‘도톨’이 다른 것에서 온 형태소라고 하기는 어렵다. ‘도토밤’은 ‘돼지의 밤’이란 뜻을 가져서 만들어진 것이고, ‘도톨밤’은 ‘도돝도톨한 밤’이란 뜻을 가져서 따로 만들어진 단어라고 보기는 어렵다. 왜냐 하면 동일한 문헌인 『두시언해』의 초간본에서는 ‘도토밤’이었던 것이 중간본에서는 ‘도톨밤’으로 등장하는 예가 발견되기 때문이다.

 

시는 四明ㅅ 누네 듧고 주으려 楢溪옛 도톨바믈 주으니라(履穿四明飢拾楢溪橡) <두시언해 중간본(1613년)>

 

그래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도토밤’이 ‘도톨밤’으로 변화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래서 ‘도톨’과 ‘돝’과의 유연성이 사라지게 되었다. 오늘날 ‘돼지’를 뜻하는 ‘돝’이 음운변화를 일으키면서 ‘돝’과의 유연성을 상실한 단어들이 꽤나 많다. 예컨대 ‘고슴도치’는 ‘고솜(의미불명)+돝’이었다. 고슴도치의 생긴 모습을 멧돼지와 연상시키면 금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단어에 접미사 ‘-이’가 붙으면서 ‘돝’이 구개음화를 일으켜 오늘날 ‘고슴도치’로 되면서 ‘돼지’와의 연관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윷놀이를 할 때 윷의 세 짝은 엎어지고 한 짝만 젖혀진 경우에 ‘도’라고 하는데, 이것도 원래는 ‘돝’이었지만, 오늘날 이것을 ‘돼지’로 인식하는 사람은 없다.


‘도톨밤’이 ‘돼지’인 ‘돝’과의 유연성을 상실하면서 역시 ‘돼지가 먹는 밤’의 의미가 사라지고 단지 의미를 모르는 형태로만 남게 되자, ‘도톨밤’의 ‘도톨’에 접미사 ‘-이’가 붙게 되고 이것이 16세기부터 ‘도토리’로 등장하게 되었다.

 

도토리 셔(芧), 도토리 샹(橡) 도토리 시(栭) <1527훈몽자회(1527년)>

굴근 도토리(稼實) <동의보감(1613년)>

도토리와 밤괘 섯것도다 <두시언해중간본(1613년)>

집이 가난하야 도토리늘 주어 써 됴셕을 치더니 <동국신속삼강행실도(1617년)>

도토리(櫟實)<역어유해(1690년)>

도토리 (芧栗) <몽유편(1810년)>

도토리 샹(橡) <훈몽배운(1901년)>

 

이것이 오늘날의 ‘도토리’로 굳어진 것이다. 이 ‘도토리’와는 다른 것이 ‘상수리’다. 상수리는 보통 ‘상수리나무’라고 하는 참나무에 열리는 열매로서 도토리나무에 열리는 것보다 크기가 크고 둥글다. 그런데 이 ‘상수리’는 이전에 ‘상슈리, 샹슈리, 샹슐니’ 등으로 쓰이다가 ‘상수리’로 정착하였다. ‘도토리’와 ‘상수리’를 혼동하기 시작한 것은 이미 19세기 말부터였다. ‘상’(橡)의 석이 16세기에 이미 ‘도토리’였었는데, 19세기부터 ‘샹수리’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샹슈리 샹(橡) <훈몽자략(19세기 말)>

샹수리 샹(橡) <아학편이본(1813년)>

샹슐이 샹(橡) <식자초정(19세기)>

샹수리 샹(橡) <언문(1909년)>

상수리 상(橡) <초학요선(1918년)>

샹슈리 샹(橡) <유합천자(1834년)>

 

이 ‘상슈리’의 ‘상’은 한자 ‘상’(橡)에서 온 것이 거의 틀림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슈리’는 어디에서 온 것인지 알 수 없다. ‘상수리’를 한자로 ‘상실’(橡實)이라고 하니까 이 ‘상실’이 ‘상슈리’가 되었다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근거가 희박하다.


결국 ‘도토리’는 ‘도밤’, 즉 ‘돼지가 먹는 밤’이란 뜻에서 만들어진 것인데, 이것이 ‘도토밤’으로 변화하고, 이것이 ‘도톨밤’으로 되면서 ‘돼지’인 ‘돝’과의 유연성을 상실하여 ‘도톨’에 명사형 접미사 ‘-이’가 붙어 ‘도토리’가 만들어지면서 ‘도톨밤’에 대치되어 오늘날까지 사용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도토리는 멧돼지가 먹는 것이 아니라 다람쥐가 먹는 것으로 인식되게 된 것이다. 만약에 ‘돼지가 먹는 밤’이란 뜻이 남아 있다면 이런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나무의 열매이지만, ‘상수리’와 구별하지 못하면서 19세기 말부터 ‘도토리’가 ‘상수리’까지도 포함하는 의미로 사용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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