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 내놓을 만한 우리나라의 대표적 음식은 무엇일까? 개인적인 편견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아마도 ‘김치’와 ‘불고기’가 아닐까 한다. 이 두 음식에 대한 국민들의 통념이 자못 흥미롭다. 실제로 몇몇 젊은이에게 이 두 음식에 대하여 질문을 해 본 일이 있는데, 그 결과에서 가장 두드러진 사실은 이 두 음식의 역사가 매우 오램을 믿어 의심치 않은 것이었다. 이 믿음은 ‘김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온당하다고 할 수 있다. 후기 중세어에 ‘김치’의 고형인 ‘딤채’가 있었고 이것이 한자어[沈菜]였음에 대하여 고유어 단어 ‘디히’가 있었음이 확인된 바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치’와는 대조적으로 ‘불고기’는 옛 문헌에서 그 모습을 볼 수가 없다. ‘블’[火]과 ‘고기’[肉]는 한글 창제 초기와 그 뒤의 여러 문헌에서 볼 수 있으나 이들의 복합어인 ‘블고기’, ‘불고기’는 중세어, 근대어의 어느 문헌에서도 볼 수가 없다. 19세기 말엽에 간행된 「한불자뎐」,「한영자뎐」에서도, 심지어는 1938년에 간행된 문세영의 「조선어사전」에서도 ‘불고기’란 표제어는 볼 수가 없다.
‘불고기’란 단어가 표제어로 제시된 첫 사전은 한글학회의 「큰사전」(제3권, 1950년)이었다.
불고기 [이] 숯불 옆에서 직접 구워 가면서 먹는 짐승의 고기.
짐승의 고기를 불에 구워 먹는 일은 아득한 옛날부터 있어 온 일이다. 그러나 양념을 한 고기(주로 쇠고기)를 숯불에 직접 구워 가면서 먹은 일은 예전에는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적어도 서울과 그 이남의 지역에서
는 이런 관습이 없었기에 서울말에 ‘불고기’란 말이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바로 위에서 말한 음식과 그 이름 ‘불고기’는 1945년의 광복 이후에 평양(넓게는 평안도)에서 피난민들과 함께 서울에 올라온 것이다. ‘불고기’는 광복 이전에는 평안도 방언에서만 쓰인 단어였다.
이 사실을 문헌이 아닌 실제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었으면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겠으나 문헌으로, 기록으로, 주변 지인과의 대담을 통한 간접적 경험이기에 못내 아쉬움을 많이 느끼고 있다. 이기문 선생이 고향(평안북도)을 떠나 서울에 온 것이 1947년 봄이었는데 그때에는 서울 장안에 ‘불고기’ 음식점이 없었다고 말씀하신다. 남대문 시장 같은 데서 평안도 피난민들이 하는 허술한 음식점에서나 볼 수 있었을 뿐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한두 해 사이에 이것이 온 장안에 널리 퍼지게 되었고 그 뒤 ‘불고기’는 서울 피난민을 따라 부산, 대구로 내려갔고 서울이 수복된 50년대에는 이미 온 나라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되었던 것이라는 전언이 있다.. 이것이 이제는 국제적으로 내놓을 만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음식이 되었으니, 참으로 놀라운 발전이라 하지 않을 수 없겠다.
옛 문헌을 대할 때마다 실제 직접 경험과 간접 경험을 총 동원하여 연구하고 있기에 사전들을 들추어 보기도 하였다. 그중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두 증언을 적으면 다음과 같다.
첫째, 광복 이전에 서울에 ‘불고기’란 이름의 음식이 없었던 사실에 대한 증언이다. 이숭녕 선생님은 대학을 졸업하고 1933년에 평양으로 가서 교편을 잡게 되었는데 취임 축하 모임에서 ‘불고기’를 처음 보셨다는 말씀을 몇 번인가 들은 일이 있다. 커다란 양푼에 그득 담은 쇠고기를 보고 놀랐고 상 위에서 지글지글 타는 고기 냄새와 연기에 놀랐다고 하셨다. 서울 태생인 선생님은 어려서 쇠고기를 많이 먹어 보지 않은 탓으로 그뒤로도
‘불고기’를 많이 먹을 수는 없었다고 하셨다.
둘째, 광복 이후에 서울에서 ‘불고기’가 널리 퍼진 사실에 대한 증언이다. 김기림 시인이 1947년에 잡지 「학풍」(2권 5호)에 발표한 ‘새말의 이모저모’란 글은 광복 이후에 일부 학자들이 만든 ‘새말’에 대하여 비판한 것으로 그때 내가 매우 흥미 깊게 읽은 글인데 그중에 ‘불고기’의 놀라운 전파력에 대하여 쓴 부분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화석이 숨을 쉴 수가 없으며 종이꽃에서 향기가 날 리 없듯, 옛날 말 학자
의 먼지 낀 창고에서 파낸 죽은 말이나 순수주의자의 소꿉질 대장간에서 만
든 새말이 갈 곳은 대체로 뻔하다. 이윽고는 대중의 냉소와 조롱 속에 잊어
버려지고 마는 것이 고작이다. 물론 간혹 그중에는 대중의 필요와 입맛에 맞
는 것이 있어서 국어 속에 채용될 적도 있으나 그것은 실로 어쩌다 있는 일
이다. ‘초밥’(‘스시’)과 같이 비교적 잘 되어 보이는 순수주의자의 새말조차
가 얼른 남을 성싶지도 않다. 거기에 대하여 ‘불고기’라는 말이 한번 평양에
서 올라오자 얼마나 삽시간에 널리 퍼지고 말았는가.
가물가물한 기억을 더듬어 이 증언을 찾았을 때 마음이 여간 뿌듯하지 않았다.(「김기림 전집」(1988) 제4권에 수록되어 있음) 이로써 ‘불고기’가 「큰사전」에 실리게 된 연유가 밝혀진 셈이다. 이 사전의 편찬자들(대표 정인승 선생)의 현실 언어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을 보여 주는 중요한 예라 하겠다. ‘불고기’가 서울말에 겨우 퍼지기 시작한 초기 단계에 이 말을 채록했다는 것은 여간 돋보이는 일이 아니다. 이에 비하면 그 뒤의 국어사전들의 편찬 태도는 우리에게 실망을 안겨준다. 그동안 간행된 사전들 중에서 (1) 이희승 「국어 대사전」(초판 1961,수정 증보 1982), (2) 금성사 「국어 대사전」(1991), (3) 한글학회 「우리말 큰사전」(1992), (4) 국립국어연구원 「표준 국어 대사전」(1999)에서 ‘불고기’의 뜻풀이를 보면 다음과 같다.
(1) 살코기를 얇게 저며서 양념을 하여 재었다가 불에 구운 쇠고기 등의 짐승의 고기.
(2) 쇠고기 등의 살코기를 얇게 저며 양념을 하여 재었다가 불에 구운 음식. 또는 그 고기.
(3) 연한 살코기를 엷게 저며서 양념을 하여 재었다가 불에 구운 짐승의 고기.
(4) 쇠고기 따위의 살코기를 저며 양념하여 재었다가 불에 구운 음식. 또는 그 고기.
이 풀이들을 이렇게 늘어놓은 것은 우리나라 사전 편찬의 실상을 보이기 위해서였다. 이렇게까지 닮은꼴이라니 그저 서글픈 느낌을 금할 수 없다. 여기서 두 가지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는 이들 사전의 편찬자들이 ‘불고기’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무엇인지를 잠시나마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불고기’는 본디 불을 가까이 놓고 직접 고기를 구우면서 먹는 것이다. 이것이 ‘불고기’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위에 든 네 사전의 풀이에는 이 특징이 전혀 지적되어 있지 않다. 또 하나는 앞서 간행된 사전들을 꼼꼼히 검토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위에서 지적한 ‘불고기’의 특징은 저 위에 인용한 한글학회 「큰사전」의 ‘불고기’의 풀이에 잘 드러나 있음을 볼 수 있다. 여기에 다시 한번 적기로 한다.
숯불 옆에서 직접 구워 가면서 먹는 짐승의 고기.
이 풀이는 그때 서울에 새로 등장한 ‘불고기’의 인상적인 특징을 잘 포착한 것이었다. 위의 (1)~(4)의 편찬자들도 이 사전을 참고했을 것으로 짐작이 되는데 어찌하여 이 풀이를 아주 무시해 버렸는지 알 수가 없다. ‘불고기’의 연구에서 남겨진 과제는 이 말에 관한 기록을 찾는 일이다. 평안 방언을 기록한 옛 문헌이 워낙 적어서 그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 예상된다. 기껏 John Ross의 Corean Primer(1877)을 비롯한 몇 책을 들추어 보았으나 ‘불고기’는 눈에 띄지 않았다.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김이협 편저 「평북 방언사전」(1981)에 ‘불고기’란 표제어가 없음은 뜻밖이다. 혹시 김동인을 비롯한 평안도 출신 작가들의 작품 속에 ‘불고기'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나 지금의 나로서는 새삼 그런 작품들을 뒤적일 엄두가 나지 않는다.